2007년 12월 20일
외로움은 이기심을 데리고. 이기심은 외로움을 이끌고.
늘 그렇듯, 12월 중순. 나는 사랑에 대한 글을 쓴다.
늘 그렇듯, 올해도 '애인'없이 한 해를 마무리 할 것 같다. 그게 자랑이냐?! 라고 하면, 언제나 그렇듯 '하하'하고 웃을 수 밖에... 작년까지는 뭐랄까. 인생에 한번 뿐인 사랑을 기다린다... 진정한 사랑... 뭐 어쩌구 저쩌구 했던 것 같다. 올해는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나'에 좀 더 집중해서 글을 써볼까 한다.
추석 때였다. 연휴가 끝나고 나는 부산에서 안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부산에서는 안성으로 바로 가는 차편이 없기 때문에, 수원행을 탔다. 하도 고속버스를 애용하다 보니, 어렸을 때 있던 멀미도 극복해 낸 지 오래였건만, 8시간에 이르는 시간. 중간에 휴게소에 섰다고 해도 그 시간은 정말이지 지독했다. 지독했다. 정말이지. 그런데 그 시간을 더 지독하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바로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이제와 말이지만, 다 큰 어른들도 맥이며, 진이며, 혼이며 다 빠질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 어린 녀석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냐만은 그래도 이건 진짜 '소음 공해'였던 것이다. 이 녀석이 중간부터 몇 시간을 쉬지도 않고 울어제끼는 것이다.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울음소리가 또 어찌나 서글프고, 서럽게 들리겠냔 말이다. 버스 앞쪽으로는 당시 최고 화제 드라마인 <태왕사신기>가 하고 있었건만, 배용준의 비주얼과 드라마의 화려한 사운드를 단번에 제압하는 그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정말정말 장난이 아니였다. '테러'였다.
그러니까 너무 '간절'해 뵈니까- 사람이라는 게 더 짜증이 나더라. 이거다. 아기의 그 서러운 울음소리만큼이나 그 우는 소리를 그쳐보려, 달래는 그 부모의 목소리도 '짜증'게이지를 한껏 높여주더라. 이거다. 그 아기만큼 울먹거리며 "제발 좀 울지마. 어? 응~ 울지마. " 하는 그들의 간절함까지. 나는 모든걸 찢어죽이고 싶었다. 아기고 뭐고, 그 부모고 뭐고.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냔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름 견딜만 했다. 이해해 줄만 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처음에는 "뚝! 그쳐."란 부모의 호통에 아기의 울음 소리가 잠시 그칠 때까지도. 두 시간이 지나고 참다 못한 한 승객이 그 부모에게 버럭 화를 낼 때까지도. 그러나 세 시간이 넘어가고, 도무지 지칠 줄을 모르는 그 고문은... 나로 하여금 두 귀를 필사적으로 막게 하고, 사람을 찢어 죽이고픈 충동을 이끌어 낸 것이다.
<천개의 공감>(김형경)이란 책이 있다. 그 책을 보면, "독신주의"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나르시즘"과 관계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심리학적으로, 그렇다. 그리고 이는 곧, 자기를 위하는 "이기주의"와도 이어질 것이다. 어차피 사랑이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희생을 빼고는 설명과 실천이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러니 겉으로 '이러지 저러니' 말해도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타인에게 무심한 나같은 사람은 결국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왜 자꾸 자기 단점을 말해요?" 라고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글쎄, 내가 그랬나?...' 라고 하고,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상대에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이래도 내가 좋아? 이래도? 난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좋아해줄래? 난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넌 이렇게 나를 좋아하다가도 결국은 실망하게 될거고, 지치게 될거고. 그리고 나를 버릴거야. "
내가 어린아이를 바라만 보는 것은 좋아하면서, 같이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곧 그 시간동안 내가 그 아이를 보살피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앞에 버스에서와 같이 나도 상대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상대를 달래보려는 부모의 역할이 나는 싫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책임과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책임과 배려가 싫고 귀찮은 것이다. 왜냐면 나는 언제까지고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기만을 바라니까 말이다. 내가 먼저, 그리고 더, 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혼자인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라는 걸 하는 그 자체가 부담스러운 나는, 결국 상대에게 택도없는 궤변들 만을 늘어놓는다. 전혀 영양가도 없고, 상대를 질리게 하는 말들 말이다. 그래서 혹, 내가 주변에 밀려드는 커플들의 행렬과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외로워 눈물 짓는 다면, 사실 그것은 당연한 결과다. 내가 자초한 결과다. 흔한 말로 '고독'이 선택이라면, '외로움'은 '이기심의 비참한 말로'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누군가가 "그래서 뭐?"라고 답한다면, 그래도 그는 정확히 자신이 어디쯤에 위치하는 지는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쓸데없이 생각만 많은 나는 그조차도 불확실하다. 사실은 내가 서 있는지, 앉아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넘어져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늘 그렇듯, 올해도 '애인'없이 한 해를 마무리 할 것 같다. 그게 자랑이냐?! 라고 하면, 언제나 그렇듯 '하하'하고 웃을 수 밖에... 작년까지는 뭐랄까. 인생에 한번 뿐인 사랑을 기다린다... 진정한 사랑... 뭐 어쩌구 저쩌구 했던 것 같다. 올해는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나'에 좀 더 집중해서 글을 써볼까 한다.
추석 때였다. 연휴가 끝나고 나는 부산에서 안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부산에서는 안성으로 바로 가는 차편이 없기 때문에, 수원행을 탔다. 하도 고속버스를 애용하다 보니, 어렸을 때 있던 멀미도 극복해 낸 지 오래였건만, 8시간에 이르는 시간. 중간에 휴게소에 섰다고 해도 그 시간은 정말이지 지독했다. 지독했다. 정말이지. 그런데 그 시간을 더 지독하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바로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이제와 말이지만, 다 큰 어른들도 맥이며, 진이며, 혼이며 다 빠질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 어린 녀석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냐만은 그래도 이건 진짜 '소음 공해'였던 것이다. 이 녀석이 중간부터 몇 시간을 쉬지도 않고 울어제끼는 것이다.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울음소리가 또 어찌나 서글프고, 서럽게 들리겠냔 말이다. 버스 앞쪽으로는 당시 최고 화제 드라마인 <태왕사신기>가 하고 있었건만, 배용준의 비주얼과 드라마의 화려한 사운드를 단번에 제압하는 그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정말정말 장난이 아니였다. '테러'였다.
그러니까 너무 '간절'해 뵈니까- 사람이라는 게 더 짜증이 나더라. 이거다. 아기의 그 서러운 울음소리만큼이나 그 우는 소리를 그쳐보려, 달래는 그 부모의 목소리도 '짜증'게이지를 한껏 높여주더라. 이거다. 그 아기만큼 울먹거리며 "제발 좀 울지마. 어? 응~ 울지마. " 하는 그들의 간절함까지. 나는 모든걸 찢어죽이고 싶었다. 아기고 뭐고, 그 부모고 뭐고.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냔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름 견딜만 했다. 이해해 줄만 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처음에는 "뚝! 그쳐."란 부모의 호통에 아기의 울음 소리가 잠시 그칠 때까지도. 두 시간이 지나고 참다 못한 한 승객이 그 부모에게 버럭 화를 낼 때까지도. 그러나 세 시간이 넘어가고, 도무지 지칠 줄을 모르는 그 고문은... 나로 하여금 두 귀를 필사적으로 막게 하고, 사람을 찢어 죽이고픈 충동을 이끌어 낸 것이다.
<천개의 공감>(김형경)이란 책이 있다. 그 책을 보면, "독신주의"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나르시즘"과 관계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심리학적으로, 그렇다. 그리고 이는 곧, 자기를 위하는 "이기주의"와도 이어질 것이다. 어차피 사랑이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희생을 빼고는 설명과 실천이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러니 겉으로 '이러지 저러니' 말해도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타인에게 무심한 나같은 사람은 결국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왜 자꾸 자기 단점을 말해요?" 라고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글쎄, 내가 그랬나?...' 라고 하고,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상대에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이래도 내가 좋아? 이래도? 난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좋아해줄래? 난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넌 이렇게 나를 좋아하다가도 결국은 실망하게 될거고, 지치게 될거고. 그리고 나를 버릴거야. "
내가 어린아이를 바라만 보는 것은 좋아하면서, 같이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곧 그 시간동안 내가 그 아이를 보살피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앞에 버스에서와 같이 나도 상대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상대를 달래보려는 부모의 역할이 나는 싫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책임과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책임과 배려가 싫고 귀찮은 것이다. 왜냐면 나는 언제까지고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기만을 바라니까 말이다. 내가 먼저, 그리고 더, 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혼자인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라는 걸 하는 그 자체가 부담스러운 나는, 결국 상대에게 택도없는 궤변들 만을 늘어놓는다. 전혀 영양가도 없고, 상대를 질리게 하는 말들 말이다. 그래서 혹, 내가 주변에 밀려드는 커플들의 행렬과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외로워 눈물 짓는 다면, 사실 그것은 당연한 결과다. 내가 자초한 결과다. 흔한 말로 '고독'이 선택이라면, '외로움'은 '이기심의 비참한 말로'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누군가가 "그래서 뭐?"라고 답한다면, 그래도 그는 정확히 자신이 어디쯤에 위치하는 지는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쓸데없이 생각만 많은 나는 그조차도 불확실하다. 사실은 내가 서 있는지, 앉아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넘어져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 by | 2007/12/20 16:20 | :+:뒤집어진 Diar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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